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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명희 『혼불』과 남원

루디아둥지 2010. 9. 30. 11:44

 

 

문학기행/최명희 『혼불』과 남원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흐르는' 그대


 




좋은 책에는 우연이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니체의 말이다. "만일 쓰는 일을 그만둘 경우에는 차라리 죽기라도 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이것은 릴케의 말이다.

그리고 작가 최명희는 말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듯 새긴 글'

좋은 책은 '피(정신)'와 '죽음'과 '생애'의 소산이다. 좋은 책에는 마지막이 없다. 시시때때로 손이 간다. 그런 책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아니 삶에서 삶으로 불이 붙듯 옮아간다.

그런 책은 펼치는 순간, 알게 된다. 우리의 영혼이 먼저 알고 부르르 진저리를 치게 되는 것이다.

최명희는 대하소설 『혼불』(총 5 부 10 권, 한길사)을 펴낸 지 이태만에 이승을 떴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그러한 글쓰기의 이유를,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로 탄생하는 글, 혹은 예술작품이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작품이라면 말이다. 참다운 예술작품은 모두 필연의 산물이다.

남원으로 길을 떠난 지난 12 월 11 일은 최명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이태째 되던 날이었다.

『혼불』의 무대이자 작가의 고향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 마을을 둘러보고, 전주에서 있을 '최명희 선생 2주기 추모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무릇 어떤 소설의 배경이 된 무대를 찾아가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소설은 허구다. 그럴싸하게 꾸민 이야기다. 그럼에도 소설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 허구가 진실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 소설은 인간의 삶의 진실을 중심으로 돈다. 작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 곧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현실이라는 맨몸뚱아리에 갖가지 옷을 입힌다. 어떤 소설의 배경이 된 무대를 찾아가는 길에는 그 옷과 맨몸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씨 가문 3 대의 역사 '혼불'에 담아

『혼불』은 전라도 남원땅 '梅岸(매안)' 마을에 터를 내린 이씨 집안의 이야기다. 그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인 1936 년부터 1943 년까지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매안 이씨 가문의 2백년 역사와 우리의 민족사가 등장한다. 소설의 무대 또한 매안을 중심으로 전주와 만주 등지를 오간다. 소설을 과연 줄거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편의를 위해 요약하면 이렇다.

<효원은 전남 보성군 득량의 '대실(竹谷)' 마을에서 전북 남원의 매안 마을로 시집온다. 신랑인 강모는 이 마을 이씨 가문 종손이다.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이어서 두 사람의 혼사는 가문의 축복과 기대 속에 치러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길은 첫날밤부터 어긋난다. 강모는 효원을 처녀로 버려둔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사촌 누이동생 강실이 들어앉아 있다.

효원의 시집에는 가문의 宗婦(종부)인 청암부인이 있고, 시아버지인 이기채와 시어머니 율촌댁이 있다. 집안과 문중의 대소사는 모두 청암부인의 몫이다. 시집올 때부터 청상과부였던 청암은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집안의 기둥이다.

청암의 양자인 이기채는 현실감각이 없고, 부인 율촌댁은 유약하다. 율촌댁은 강모가 효원에게 정을 부치는 못하는 것을 기가 드센 효원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청암부인은 효원을 아낀다.

효원은 청암부인의 지시에 따라 달의 정기를 빨아들여(吸月) 아들 낳기를 기원한다. 강모는 어려서 죽은 친형 강수의 冥婚(명혼) 굿이 벌어지던 밤에 사촌 누이동생 강실을 범한다. 그리고 그 길로 아내 효원의 몸을 처음으로 범한다. 효원은 이 때 임신하여 아들을 낳는다.

강모는 전주에서 기생 오유끼와 살림을 차리고 직장의 공금을 횡령해 파면 당한다. 강모는 사회주의자인 사촌형 강태를 따라 만주로 가지만, 이렇다할 일을 찾지 못하고 떠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가문을 지켜온 청암은 창씨개명을 계기로 失氣(실기)하여 세상을 떠난다. 청암은 숨이 끊어지기까지 강모를 찾지만 끝내 소식이 닿지 않는다. 보름달이 뜬 밤, 마을 변두리 '거멍굴'로 부르는 民村(민촌)의 무당 백단이 부부는 청암부인의 묘를 파헤치고 제 아비의 백골을 함께 묻는다. 명당에 偸葬(투장)을 하면 후대에는 천민을 면할 수 있다는 아비 홍술의 유언을 따른 것이다. 그 밤, 거멍굴의 상민 춘복은 양반자식을 낳기 위해 달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양반집 딸 강실을 강간한다. 강실은 춘복의 씨를 밴다.

효원은 청암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이의 혼불을 보고 그것을 제 몸으로 빨아들여 종부의 대를 잇고자 한다. 강모와 강실의 관계를 알게 된 후에도 그녀는 강실의 도피처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그 길로 강실은 거멍굴 춘복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묘연한 강실의 행방에 집안은 쑥밭이 된다. 효원은 강실의 어미인 오류골댁의 손을 잡고 오열한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사실, 이러한 줄거리는 『혼불』의 한낱 검불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소설이 그렇겠지만, 『혼불』의 감동은 줄거리로는 느낄 수 없다. 특히 이 작품의 매력은 문체에 있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들이 빚어내는 갈등과 사건은 설명보다는 치밀한 감각적인 묘사로 부각된다. 거멍굴의 상놈 춘복이 양반집 강실이를 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길 빌며 달빛을 흡입하는 장면을 예로 보자.

"온전하게 둥그런 얼굴로, 검은 파도처럼 첩첩한 산 능선을 발 아래 치맛자락같이 거느리면서 떠오른 보름달은 놀랍게 크고 너무나 가까웠다. (…) / 달은 거대한 빛의 아가리였다. / 그 아가리의 빛이 장마진 붉덕물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회오리 돌았다. 한번 빠지면 못 나오는 늪이 용틀임으로 뒤집히는 아가리. / (…) 칼로 도려낸 듯 차갑게 뚜렷한 원으로 삼엄하게 가두는 달의 서슬에, 몇 낱 별빛마저 무색하게 지워져 버린 겨울 밤 하늘은, 속이 시린 궁청빛으로 깊어 더욱 시퍼렇다. / 목으로 빨려들어오는 달빛은 가슴을 깎으며 아프게 비집고 내려가 다시 폐장을 가득 채웠다. (…) / 춘복이의 몸은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한번 빠지면 못 나오는 늪이 용틀임으로 뒤집히는 아가리',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반상의 차별을 뛰어넘으려는 춘복이의 상황을 암시한다. 『혼불』의 이야기는 거개가 이런 표현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다.

'사람은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야'

소설의 무대인 매안은 지금의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 마을 일대를 가리킨다. '巳梅(사매)'는 1914 년 사동면과 매내면(매안)이 폐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때 서원리와 도촌리를 합하여 부른 것이 '書道里(서도리)'다. '書院(서원)'이나 '道村(도촌)' 등의 마을 이름은 이곳이 오래도록 유림의 땅이자 文鄕(문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최명희는 소설에서 "賜額書院(사액서원)이었던 매안서원"이라는 말로 그 유래의 한 자락을 들추어 준다. 뒷산 노적봉에서 뻗어내려온 비스듬한 터 위에 들어앉은 마을과 그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실개천에 목을 대고 있는 들판.

노봉 마을은 여느 시골 마을과 하등 다를 게 없지만, 그 현실의 노봉은 『혼불』의 매안을 겹쳐 보면 새로운 풍경이 된다. 마을과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원뜸'에는 종가가 자리해 있고, 그 밑으로 '중뜸'과 '아랫몰'이 자리해 있다. 종가 뒤로는 사당 터가 남아 있고, 그 옆 산기슭에는 조그마한 방죽이 있다. 바로 소설 속의 '청호 저수지'다.

"매안의 청호(采湖)만 하여도 그렇다 / 언뜻 그 이름만을 들으면 무슨 넓은 호수를 연상하게 되지만 실상은 마을 뒤의 저수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산이 그렇게 많으면, 골짜기마다 저절로 흘러내리는 물만 한잘에 고여 주어도 참으로 흐뭇하련만, 본디 이 근처의 토질이 척박한데다가 산자락의 계곡물조차도 그다지 수량이 많지 않았다." "본디 賜額書院(사액서원)이었던 매안서원의 書院沓(서원답)을 경작하는 데 쓰려고 팠던 손바닥만한 방죽 하나에 의지하여, 여름마다 고초를 겪으면서도 달리 어쩌지 못하고……."

소설 속에서, '청암부인'은 그의 서른 아홉 살 때 그 작은 방죽을 드넓은 청호저수지로 바꾸어 놓는다. 여자 혼자서 그 큰 공사를 어찌 감당하려느냐며 반대하는 아들 이기채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한 섬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열 섬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 곯는 자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하느니라. 백 섬지기 짓는 사람은 고을을 염려하고, 그보다 다른 또 어떤 몫이 있겠지."

그런데 그 청호저수지는 소설이 아닌 현실 공간에서는 여태 둠벙에 지나지 않는다. 청호저수지는 작가가 소설에 입힌 상상력의 옷인 셈이다. 소설 속의 '매안 이씨 가문'이 현실에서는 '朔寧(삭녕) 최씨 가문'인 것도 그렇다. 노봉 마을은 朔寧(삭녕) 최씨들이 5백여 년 동안 터를 닦아온 곳으로, 최명희는 바로 이들의 후손이다. 그런 최명희가 전주에서 태어난 것은 그의 아버지가 당시 전주로 분가하였기 때문이었다.

최명희의 조부는 한학자였고, 부친은 일본 유학을 한 지식인이었다. 아버지는 법원에 잠시 적을 두었으나 해방 후 혁신당 당수를 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은 '효원'의 모델로 알려진 노봉 마을 최씨 종가의 할머니(그이는 이름을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사진 찍는 것도 거부했다)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46세를 일기로 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때 최명희는 갓 스물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뿌리에 대한 탐구'로 발전한 것이 『혼불』이었다."

'혼불'은 '사람이 살아 있는 의미'

『혼불』은 미완성작이다. 최명희는 만주로 간 강모가 빨치산이 되기까지, 그러니까 해방 이후 한국전쟁 직후까지의 격동기를 나머지 5 권 분량으로 남아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혼불은 그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혼불』을 마무리하던 96 년 8 월에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알았으나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장장 17년 동안 육필로 써내려간 원고지 1만 2 천장 분량의 『혼불』이 세상에 나왔다.

생전에 그는 "『혼불』이 언제 끝날지 나도 모른다." "혼불은 사람 몸 안에 살아있는 불덩어리"라고 했다. 소설에는 이렇게 썼다. "사람의 육신에서 그렇게 혼불이 나가면 바로 사흘 안에, 아니면 오래 가야 석 달 안에 초상이 난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러니 불이 나가고도 석 달까지는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혼불이 나간 사람의 그 '석 달'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닐 터이다. 이 말을 삶에 빗대면, 혼불이 없는 사람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과 같다는 뜻이 된다. 혼불은 '살아 있는 의미'인 것이다.

최명희의 혼불은 『혼불』로 남았다. 니체는 말했다.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책을 읽는 자를 미워한다."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그저 읽히기를 바라지 않고 암송되기를 바란다." 최명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느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최명희)

노봉 마을을 나서면 서도역에 닿고, 전라선 열차는 철길을 따라 마을을 비껴 달린다. 소설 속의 '강모'가 전주를 오갔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난 길이다. 작가 최명희도 수없이 이 길을 오갔을 것이다. 그 길을 따라, '최명희 선생 2주기 추모제'가 있는 전주로 향했다. "당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보세요. 그 속에 바로 '혼불'의 주인공들과 조상의 삶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겁니다." 그것은 최명희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것은 살을 에듯 불어오는 바람소리였다. 텅 빈 들판이 덜커덩, 덜커덩거렸다[글·송광룡 / 사진·이종국 출처/월간금호문화]

출처 : 세계를 읽어주는 나뭇잎숨결
글쓴이 : 나뭇잎숨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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