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노무현 대통령은 8일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뒤 ‘민주주의 똑바로 하자’란 제목으로 특강을 펼쳤다. 강연의 요지·목차와 함께 전문을 싣는다. | |
원광대 특강 - "정치·복지·언론 후진국 벗어나 성숙한 민주주의로" | |
<노 대통령 특강 전문> [1]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제 주변에도 원불교 종교를 믿고 또 중요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몇 사람 있는데,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중심이 분명한데 그러나 어떤 주장이 과하지 않고 합리적입니다. 무슨 말을 하거나 이론을 말할 때도 독선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신망이 있지요. 그러면서도 종교 전체의 활동을 보면 우리 사회에 소리 없이 많은 봉사와 기여를 하고 있어서 굉장히 믿음이 갑니다. 제가 성격이 게으르고 해서 그러지 못합니다만, 믿는 거나 다름없이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가르침은 다 비슷한 것이어서 저도 좋은 분들 영향을 받고 또 본받을 것 본받으면서 그렇게 삶을 진실하게 살도록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국정실패’ 말하는 사람들, 납득할 수 없어 학문적 업적이야 좀 없더라도 현실에서 현장에서 정치라도 좀 똑똑히 해야, 그래야 박사 값을 하는 것인데, 요즘 제가 인기가 별로 시원찮아서 학위 주신 분들께 이래 부담을 드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무척 마음에 걸립니다. 저보고 자꾸 ‘국정 실패’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저는 어떻든 납득하지 않습니다. 저도 비교적 솔직해서, 잘못이 있으면 잘못이 있다고 하고 ‘이건 뭐 잘못 생각했다’ 말할 수도 있고 또 ‘이건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별로 말할 게 없습니다. 제 욕심에는 부족함이 많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욕심에도 부족함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행동과 이룬 성과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정권이나 다른 나라하고 비교해서 말해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요. 비교해 보면 제가 민주주의를 어느 정권보다 잘못했습니까? 나라 경제가 어느 정권에 비해서 잘못됐다는 것이냐, 한번 그렇게 꼼꼼히 따져 보면, 뭐 그리 크게 자랑할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실패라고 그렇게 매도될 만큼 그렇게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지표와 그래프로 참여정부 성과 평가해보자 제가 머리부터 그런 것이지만 하도 억울해서 정책 투입이든 산출이든 정책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지표들을 다 모아봤습니다. 모아서 이 책(<있는 그대로, 대한민국>)에 담아 봤습니다. 실제로는 이 2배 정도 되는 별도의 책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프입니다. 그래프로서, 움직일 수 없는 지표로서 우리가 평가해 보자, 국정이라는 것이 모두가 지표로 그렇게 측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걸로 한번 해 보자,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이것입니다. 형편이 안 되시는 분은 어쩔 수 없지만 형편이 되시는 분은 꼭 한 권씩 사서 보시고 저, 참 억울한 심정을 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기 보면요, 성장률이 있습니다. 5%는 넘지를 못했습니다. 여러 얘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성장률이 우리 경제 성과에 유일한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한 시기 성장률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그 정권의 공적에 의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노태우 대통령 때 성장률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았죠.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경제를 잘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성장률은 이전 정부의 공적, 주가는 미래 경제에 대한 예측치 정책 전체의, 경제에 대한 전망 전체를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측정해 놓은 것이 주가입니다. 지금의 우리 경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거냐, 우리 기업들의 수익이 어떻게 될 거냐 하는 데 대한 예측을 돈 걸고, 돈 걸고 예측을 말하는 것이 주식의 가격 아니겠습니까? 돈도 걸지도 않고 떠들어 쌌는 사람들 얘기는 소용없습니다. 자기 재산 딱 걸어놓고 ‘올라간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때 주가가 올라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요새는 좀 너무 많이 올라가서 제가 좀 걱정입니다. (웃음) 사실은 제가 올해 바랐던 것이 1500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칙대로 했습니다. 저는 경제에도 원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만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도 원칙이 있고, 원칙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정석이라고, 바둑에 비유해서 정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책이, 모범적 정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남은 기간에도 그대로 할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랑하는 이치를 읽고 배우고 경험하고 그리고 크게 보고, 또 깊이 생각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동안의 가치가 무엇인가, 사상이 무엇인가 많은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모든 가치와 사상은 한 가지 공통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근원에서는 각기 다르게 얘기하고 있지만 근원이 어디에 있든 바라보고 있는 목표는 인간의 행복입니다. 사람은 빈곤과 침략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고자 공동체를 만들고 그리고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권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지배와 억압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빈곤과 무질서 대신에 지배와 억압, 전쟁이라는 새로운 고통과 불안이 불행의 새로운 근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이 생긴 결과입니다. 빈곤과 전쟁, 지배와 억압으로 인한 고통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사에서 핵심적인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사상을 창안하고 실험을 해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 위한 최고의 사상 근대 이후의 모든 사상은 결국 민주주의로 귀착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사상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세상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만큼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top] [2] 왜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는 인간의 행복·존엄을 중심에 놓고 있는 사상 왜 민주주의인가? 다 아는 이야기인 것 같지마는, 실제로 가만히 따지고 보면 다 알지를 못합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읽어 보면 소설보다 훨씬 재미가 있습니다. 깊이 들어가 볼수록 더욱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고 또 이치도 알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씹을수록 더 맛이 있습니다. 왜 민주주의인가? 자유, 평등, 인간의 행복, 인간의 존엄 이것을 중심 가치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상이다, 이런 정도로 말씀드리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그 이후 1919년에 바이마르헌법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사상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신분과 계급에 의한 지배구조에 근거한 특권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번영에 가장 적합한 제도 번영에 적합한 제도입니다. 돈의 폐해가 많아서 돈 얘기하면 입장이 난처해지기도 하는 것인데, 그러나 번영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복에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근데 이 번영에 민주주의가 적합한 제도라는 것이지요. 우선 경쟁의 정치는 경쟁의 시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합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존중합니다. 자유와 다양성은 창의의 원천입니다. 오늘날 경제의 경쟁은 창의의 경쟁, 혁신의 경쟁이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야말로 창의를 꽃피우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와 같은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자본 이론이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을 풍부하게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뭐냐? 신뢰, 원칙, 연대, 개방, 이런 개념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합니다. 2000년에 브라질에서 세계경영경제학회가 모여서 경영·경제에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사회적 조건이 뭐냐라고 했을 때, 사회적 자본이 충분한 나라, 높은 나라가 경제와 경영에 성공한다, 이런 이론을 내놨습니다. 이게 핵심이 되는 신뢰와 원칙, 규범과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그 사회의 역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대는 타협과 양보를 통해서 공동체적인 합의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역량을 말하는 것이지요. 개방은 FTA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는 정보의 투명한 공개, 그것을 개방된 사회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이 사회적 자본은 민주주의에서라야 충실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번영에 가장 적합한 제도이다, 이 얘기는 자주 안 듣던 얘기지요? 이건 이게 이제 제 학위 값입니다. (웃음) 민주주의는 평화의 기술, 평화는 번영과 행복의 기본조건 민주주의는 평화의 기술이다, 이것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의 기초가 되고 있는 이론입니다. 근데 현실에 있어서 잘 실현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치이기 때문이고, 국민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민주주의는 평화의 제도이다, 요약하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평화는 아시다시피 번영과 행복의 기본 조건입니다. 감이 잘 안 오시면 전쟁, 즉 평화의 반대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쟁, 모든 것은 파괴되고 맙니다. 인간의 행복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경제의 토대도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평화가 행복과 번영의 기본조건입니다. 민주주의는 공존과 통합의 기술 민주주의는 공존과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 모두 포섭하고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제도입니다. 다원적인 가치와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집단을 이루어서 분파를 만들고 투쟁과 타협으로 분열을 극복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는 상대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상대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사상입니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사생결단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배제의 사회가 됩니다. 그래서 절대주의 또는 극단적 사상으로는 상대방을 억압하고 배제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공동체 속의 하나로 통합할 수가 없습니다. 죽거나 살거나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만이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포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가장 훌륭한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적인 절차는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대화와 타협, 경쟁과 승복, 그리고 재도전의 기회 보장을 통하여 이견과 이해관계를 통합하는 정치 기술입니다. 재도전의 기회, 민주주의에서만 패자에게 부여하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참 가치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야말로 상생의 정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가끔 염증이라든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정말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민주주의 이외에는 반대자를 이렇게 관용하는 사상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권력과 지배를 정당하게 하는 제도 권력과 지배를 정당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권력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은 항상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 왔습니다. 권력이 공공의 재산일 때 그것은 정당하고 정의이지만, 권력이 사유화됐을 때 특권이 되고, 지배 수단이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억압의 수단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권력은 정당한 것입니다. 이 정당한 권력은 정통성이 있을 때 정당한 것입니다. 정통성이 없는 권력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바로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 제도에 의해서, 국민주권 사상에 의해서, 그리고 대의제도에 의해서 자기 지배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아울러서 권력은 항상 사유화되고 남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또한 민주주의는 거기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 놨습니다.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제도, 권력의 적법성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법치주의, 권력의 분립과 견제, 사법권의 독립, 적법 절차, 이런 제도를 준비해 놓고 있지요. 그래서 민주주의입니다. [top] [3] 민주주의, 아직 갈 길이 멀다. 민주주의의 현실-민주주의의 이상은 실현되고 있는가?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민주주의는 정말 어디까지 왔는가,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인가, 우리나라는 그리고 선진국가는... 여기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권의 지배는 해체되었는가,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는가, 기회의 균등은 보장되고 있는가, 평화는 이루었는가, 국민적 통합은 이루어졌는가,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는 과연 실현되고 있는가? 아직도 갈등과 혼란을 계속하고 있지요.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도 않았는데 이 시기에 또한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언론권력은 가장 강력한 권력 보유한 집단 과거의 위기, 현재의 위기, 미래의 위기를 한번 생각해 보죠. 당초의 민주주의는 ‘제3계급’의 지배였습니다. 아니 ‘부르조아의 민주주의’라고 얘기를 했었죠. 즉 유산계급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대중은 소외됐고 그러면서 사회주의가 등장하고 여기에서 다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공산주의라고 하는 전체주의가 성립이 됐었죠. 아울러 이런 혼란에 대응해서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가 다시 등장했다가 몰락했습니다. 이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습니다만, 또 사람들은 어떻게 이 고비는 넘어섰습니다.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권력이 국민을 지배하는 수단은 정보와 돈, 무력입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정보라는 것은 끊임없이 거짓정보를 생산해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지요. 자기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왕이 자기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때부터 태초의 속임수가 시작됐던 것 아닙니까? 정보 조작, 이데올로기 조작이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속임수, 매수, 협박... 옛날에 군사정권 시절에 판사들이 독립이 돼서 말을 잘 안 들으니까 아이들 취직 하는 데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억압을 했던 시절이 있지요. 어떻게 보면 매수이고, 어떻게 보면 협박이지요. 시장은 인간사회에 불가피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시장이 점차 비대해져서 사람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위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 낸다, 공동체에게 시장을 위한 행동을 요구한다라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이구요. 시장도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이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시장의 독점적 독재적 지배자가 시장을 앞세워서 공동체를 지배할 가능성이 지금 대단히 강한 것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그렇지요? 여기에 언론권력이 등장합니다. 언론권력은 가장 강력한 권력수단을 보유한 집단입니다. 독재 시대에는 독재와 결탁하고, 시장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시장 또는 시장의 지배자와 결탁하고, 권력에 참여해서 버스럭지를 얻어먹던 잘못된 언론들이 많이 있었지요. 그리고 독재가 무너지고 나니까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해서 누구는 대통령 된다, 누구는 안된다까지 결정하려고 했었죠? 92년에는 성공했고, 97년에 실패하고, 2002년에 또 실패했습니다만, 또 2007년에 그들은 또 성공하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 다른 나라도) 그런 것이지요. 지난날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민주주의 외부로부터, 민주주의 아닌 힘으로부터의 위협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이것은 민주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위협입니다. 이것은 가치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정치는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입니다만, 시장은 이익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치의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언론과 시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을 때 그 정통성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시장의 정통성이, 시장이 공동체를 지배할 정통성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것이지요. 시장의 강자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도 좋다는 정통성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언론의 정통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역사적으로 언론이 민주주의의 무기였습니다. 권력에 맞선 시민사회의 무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헌법의 정치적 자유의 핵심적인 제도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언론은 보호받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권력에 맞선 언론, 시민사회의 대변자로서의 언론일 때 그와 같은 특수한 지위를 우리가 인정한 것이지요. 그것이 수행하는 행위의 가치성 때문에 거기에 우리가 정통성을 부여했던 것인데, 어느덧 민중을 억압하는 기제로, 민중을 억압하는 편에 서서 민중을 속이는 데 앞장서 있다면 그 정통성은 어디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하나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위기는 정치에 대한 불신, 냉소, 무관심, 우선 민주주의에서 결정한 대화와 타협의 결과가 나한테 불만이다, 이런 이기주의적 관점이 있을 수 있죠. 나의 사상에 맞지 않다, 이 근본주의 사상입니다. 실제로 정치에서 과거 독재 같은 때 특권과 반칙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입니다. 사적 이익의 추구, 부정부패, 거짓말과 무책임과 불신,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그런 불신이 아직도 우리 국민들 가슴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비용이 많이 듭니다. 딱 한 번 결정하면 되는데 그걸 가지고 와글와글 시끄럽고요, 선거 한 번 하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도 시끄럽죠. 싫어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갈등과 혼란,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에 대해서 국민들은 짜증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실은 당연히 들어가야 될 비용이지만 어떻든 정치가 제대로 보답을 못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불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치는 권력투쟁입니다. 권력투쟁은 필연적으로 어두운 모습을 보이게 돼 있습니다. 권력투쟁 없는 정치는 있을 수 없지만, 권력투쟁은 언제나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불신이지요. 어떻든 갈등과 대결, 경쟁은 정치의 속성상 당연한 것이지만, 불가피한 것이지만, 아직 운동경기와 같은 수준의 경쟁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규칙과 절제 없는 대립과 투쟁, 언론과 여론은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강자에 대해서는 어쩐지 나쁘게 말하는 것이 좋지요. 요즘 그것 갖고 한 몫 보려는 언론들이 있습니다. 제가 언제 강자입니까? 정부에는 옛날에는 강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정부에 강자가 없습니다. 제가 별로 그렇게 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여전히 정부라는 이유라 해서 정부를 비틀고 꼬집고 흔들면 한몫 보는 줄 아는 언론들이 있지요. 그래서 간판은 ‘할 말은 하는 언론’, 이렇게 나오지요. 제 편 좀 들어 주십시오. 이럴 때는 박수도 한 번 쳐주시고 한 번 활짝 웃어주시고요.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은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의 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전제왕권은 소멸했고, 파시즘은 패배하고, 공산주의는 붕괴했고, 그리고 독재 권력도 점차 붕괴돼 가고 있으니까, 국민들이 이제는 안심이다 하고 신경을 꺼버립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위기가 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민주주의에 새로운 지배구조, 즉 시장의 지배, 언론의 지배, 새로운 지배구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린 것이지요. 권태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능한 정부보다 부패한 정부가 낫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이런 무식한 소리 안 합니다. 이런 무식한 말을 하는 정당이 있는데, 그 정당에 또 박수치는 언론이 있고요, 그걸 옮기는 언론이 있고요, 박수치는 국민도 더러 있어요. 아주 위험하지요.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그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장래는 여전히 민주주의다... 앞으로도 모든 사상을 포섭해서 민주주의는 진보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계속 유지되고 발전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사상은 사상과 이론이 포용성이 있고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변화도 수용할 수 있고 어떤 사상도 그 안에 수용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 안에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진보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장래- 시련과 투쟁 통해 진보 계속 할 것 그동안 진보해 왔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선거권의 확대,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새로운 가치에 추가... 이런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완결은 없을 것입니다. 역사에는 완결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배와 억압, 전쟁이 생겨난 동기―인간의 본성이지요―인간의 탐욕과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투쟁하면서 발전할 것입니다. 시련과 투쟁, 진보는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가 앞으로 발전해야 될 과제는 무엇인가 몇 가지 짚어 보겠습니다. 민주주의는 투표하고 대화와 타협 하고, 선거하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그렇게 한다고 민주주의가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내용에 있어서 진보성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3계급의 민주주의와 대중의 소외를 말씀드렸는데, 궁핍한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궁핍해서 남에게 구속을 받아야 되는 사람에게 평등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하는 실질적 자유, 실질적 평등,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top] [4] 장래의 과제는 무엇인가? 진보의 민주주의-약자도 같이 살도록 권리 보장하는 게 진보 진보란 무엇인가?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자, 이런 것이지요. 약자도 같이 살자, 아주 쉽게 말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는 민주주의, 그것이 진보의 사상이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약자에게도 그들의 이익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밥만 주는 것이 아니라 권리도 함께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살자는 사상을 연대의 사상이라고 얘기하지요.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경쟁의 장에서 권력 간의 경쟁 또는 투쟁의 장에서 기회 균등과 세력 균형을 보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개 진보적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진보 사상과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는 민주주의 고유의 원리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요즘 와서 진보 하는 사람에게 ‘너 좌파냐? 너 공산주의자냐?’ 하고 갑자기 묻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진보적 민주주의는 통합의 조건입니다. 통합의 실질적 조건은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할 수 있는 사회라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복지와 기회의 균등이 필요하고,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대의 사상과 계층 간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균형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보를 위해서 제도를 만들 때 시장의 기능을 완전히 죽여버리자 하는 사상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시장을 폐쇄하자는 것도 있었죠. 시장을 많이 규제하자. 가급적이면 시장은 적게 규제하고 시장은 시장대로 살려가면서 시장의 규제를 덜 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말한 이 연대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런 의견들의 차이가 많이 있을 수 있겠죠.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 시장과 조화되지 않는 진보 정책 성공하기 어려워 시장과 조화되지 않는 진보의 정책은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극단주의 좌파의 주장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근본주의 좌파의 주장이, 근본주의 진보의 주장이 성공하지 못하는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그래서 진보적 사상은 시장과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장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투쟁의 단계를 우리는 넘어왔습니다. 그 민주주의가 제도화하는 단계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 개혁, 청산, 많이 했었죠.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는 투쟁이 본질이다, 민주주의는 개혁이 본질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것은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고 어느 정도 제도화된 민주주의 위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위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상대주의 말씀드렸지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관용입니다. 관용의 제도는 서로 인정하는 것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부득이할 때 규칙을 적용하고 승복하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화와 타협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 과제이지요. 현재의 과제입니다. 언론은 우리가 개혁해야 합니다. 언론은 여론을 지배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헌법상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언론은 권리의 횡포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깃발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를 받았던 것이고 또 앞으로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독재권력과 유착하여 독재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해 왔고, 새로운 지배구조 하에서는 시장지배 권력과 결탁하여서 시장지배 권력에 봉사하고 있고, 이제는 그 자신이 지배권력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책임-‘사주로부터’ 자유가 우리 언론에 가장 중요 우리의 많은 사람들이 언론 자유를 얘기하고 있는데 언론 자유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만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돈으로부터의 자유, 말하자면 금권으로부터의 자유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오늘 언론 사주가 금권화 돼 있는 사회에서는 언론 사주로부터의 자유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언론의 자유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언론의 자유는 언론 사주로부터의 자유, 이들 데스크로부터나 좀... 데스크야 뭐 좀 직업상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사주로부터 언론 자유를 얘기해야지 난데없이 참여정부보고 자꾸 언론자유, 언론자유 해요. 언론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국민의 편에서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시민의 권력이 되어야 합니다. 약자의 권력이 되어야 합니다. 참여정부도 약자니까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좀 싱거운 소리 했습니다마는 한국의 경우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소비자 권력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시장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시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행복,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한계가 있고 시장도 실패합니다. 시장의 실패로 인해 낙오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것도 국민의 권익을 지켜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 것이지요. 시장 지배자의 부당한 지배도 있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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