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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엔터테이너 노무현 대통령

루디아둥지 2013. 7. 24. 14:14

⑱ 타고난 엔터테이너 노무현 대통령

이백만 교장의 노무현 이야기 2012.12.26

⑱ 타고난 엔터테이너 노무현 대통령

[이백만 교장의 노무현이야기] 엔터테이너

운영자

 

“학위수여장을 보니까 ‘명박’이라 써 놨던데…, 제가 '노명박'이 되는가 싶어 갖고(웃음)…, 하여튼 뭐 이명박씨가 '노명박'만큼만 잘 하면 괜찮습니다.”

노무현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렸을 때에도, 학창시절에도, 민주화 운동할 때에도, 정치를 할 때에도, 대통령퇴임 후 봉하마을에 살 때에도, 노무현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심지어 서거 후에도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찾아온다. 노무현은 살아서도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죽어서도 끌어 들인다.

노무현은 사람들을 잡아당기는 강력한 자력을 갖고 있었다. 그 실체는 무엇일까. 인간적 매력이다. 노무현은 타고난 엔터테이너(entertainer)였다. 촌철살인의 탁월한 유머감각은 노무현이 몇 시간을 이야기하고 강연을 해도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노무현 유머’의 가장 큰 특징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는 사실이다. 재미는 있는데 의미(메시지)가 없는 유머는 그냥 오락일 뿐이다. 의미는 있는데 재미가 없는 유머는 유머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퇴임한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봉하마을을 찾아가 “대통령님 나오세요!”라고 불러 낸 것도 ‘노무현 유머’를 들으면서 그의 인간적 매력을 한번 느껴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각본에 없는 유쾌한 애드리브(ad lib)는 노무현의 주특기였다. 노무현은 농촌마을에서 아낙네들과 간담회를 하는 자리든, 국무회의나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든, 특유의 순발력으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2월 지방나들이 행사로 경북풍기 인삼가공공장을 시찰했다. 청와대 출입 TV카메라기자들은 이 때 노 대통령이 농촌 아낙네들에게 던진 가벼운 농담을 ‘2004년 최고의 명품 유머’로 선정했다. 

주부 사원 “풍기 홍삼정과 드셔보십시오.”
노 대통령 “(주부 사원들 사이에 앉아 홍삼을 시식하며) 통째로 주면 먹기가….”
주부 사원 “풍기 홍삼정과는 특히 남성 정력에 최고입니다.”
노 대통령 “집사람에게 그런 소리 마십시오. 이것만 먹으라고 갖다 주면…(웃음).”

넉살 좋은 시골 아저씨처럼 말하는 현직 대통령의 가식 없는 유머 한마디에 인삼작업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배꼽을 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 원광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민주주의 똑바로 하자’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대통령은 이날 강연에서 재미와 의미를 곁들인 ‘노무현 유머’의 정수를 보여줬다. 강연이 무려 74분 동안이나 진행되었으나 박수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의 강연은 따분한 ‘공자님 말씀’일 것이라는 선입관이 여지없이 깨고 말았다.

노 대통령은 강연 첫머리에서부터 ‘노명박’이라는 말로 웃음폭탄을 터뜨렸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참여정부 실패론을 내세우면서 대권행보를 맹렬하게 하고 있을 때였다. 유머 속에 강철보다도 강한 뼈가 숨어 있었다. 그야말로 언중유골이었다. 

“이제 걱정이 되는 것 하나가, 오늘 학위수여장을 보니까 ‘명박’(명예박사)이라 써놨던데, 제가 ‘노명박’이 되는가 싶어 가지고…. 하여튼 뭐 이명박 씨가 ‘노명박’ 만큼만 잘 하면 괜찮습니다. 조금 자화자찬 같지만 ‘노명박’ 만큼만 해라, 그렇게 하고 넘어가지요.”

노무현은 벗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라면 자신을 기꺼이 웃음거리로 내던지기도 했다. 체면이고 뭐고 따지지 않았다. 노무현의 곱사춤 이야기다. 와이셔츠 속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엎어 넣은 구부러진 등, 들썩이는 어깨, 흐느적거리는 몸뚱이, 구성진 목소리의 각설이타령…. 

노무현의 곱사춤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다. 노무현의 곱사춤을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노무현의 춤사위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에 의해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올 뿐이다.

1991년 초 ‘꼬마 민주당’ 전당대회 날이었다. 3당합당의 충격을 아직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던 노무현 의원은 행사를 잘 마무리한 후 당직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호프집으로 2차를 하러 갔다.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최광웅 전 청와대 인사비서관의 기억이다. 

“한참 생맥주 잔이 돌았는데 갑자기 노 의원이 탁자 위로 뛰어 올랐다. 우리는 ‘어어’ 하며 당황해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노 의원은 그 탁자 위에서 묘기를 하듯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 아닌가.” 1)

노무현은 마음이 통하는 언론인들과도 잘 어울렸다. 김이택 한겨레 논설위원의 회고다.

“하루는 그가 술상을 물렸다. 등줄기에 방석을 밀어 넣고, 양쪽 콧구멍엔 담배를 끼웠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흐느적거렸다.” 2)

노무현은 학창시절 공부도 잘  했지만, 놀기도 잘 했다. 특히 소풍 갈 때나 수학여행 갈 때나 친구들이 모여들면 그들을 항상 즐겁게 해주었다. 고등학교 단짝친구였던 원창희의 기억이다.

“소풍을 가서 반 대항 장기자랑을 벌어지면 개사한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했고, 가히 일품의 장기였던 뱀장수 흉내와 곱사춤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3)

노무현이 춤을 추면, 노무현과 관중은 하나가 되었다. 노무현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 관중도 침울해졌고, 노무현이 슬쩍 웃으면 관중도 따라 웃었다.

곱사춤은 특권계급(양반)의 허례허식과 위선을 풍자한 저항의 몸짓이다. 노무현은 왜 곱사춤을 추었을까.

“곱사춤은 서민의 한을 곱사라는 불행한 육신으로 표현한 희열의 춤이다. 그 희열은, 웃되 소리 낼 수 없고 울되 눈물을 떨어뜨릴 수 없다. 울기에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 차라리 웃어야 했던 그 춤이다. 노무현은 곱사춤이 어울리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4)  

노무현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벗이 되었고 같이 어울렸다. 같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우스개소리 하고…. 노무현은 사람을 불필요하게 긴장시키는 엄숙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다. 노무현 특유의 무서운 소통 방식이었다.